2000.산행기록(추억)/2006-2008 지리산

지리산에서담는작은소망

베리타스박찬명 2006. 5. 29. 20:18
http://blog.naver.com/pcm625/100018766771

 
지리산
산행:지리산 (산행거리 33.8K/17시간:산행도기준)
산길:성삼재-(2.7K)-노고단-(20.4K)-세석/1박-(5.1K)-천왕봉-(5.6K)-중산리
일정:2005.10.15(토)-17(월)
동행:2명(산친 J와께)
이동
접근로=용산역(10월15일.22:50출발/열차/무궁화/20.400원)
       구례구역(10월16일.03:22도착-03:30출발/군내버스/800원)
       구례버스터미널(03:40도착-04:20출발/군내버스/3,200원)
       성삼재(05:00도착-산행출발)
귀가로=중산리(10월17일.16:30출발/승용차/산행중 만난 광주 J님 차)
       구례구역(18:40도착-19:16출발/열차/새마을/9,800원)
       익산역(20:39도착-21:01출발/KTX환승/25,500원)
       용산역(22:49도착-집으로)
☞사전 계획상의 귀가로
       중산리(10월17일.12:00출발/시외버스/3,500원)
       진주버스터미널(13:10도착-14:00출발/고속버스/18,500원)
       서울남부터미널(17:45도착-뒤풀이 후 집으로)
산행준비
대피소=세석대피소 예약(15일전~2일전/인터넷 국립공원)
접근편=열차/무궁화.용산역→구례(인터넷 한국철도공사 홈티켓)
먹을것=주부식:말린쌀(3식:6홉).누룽지(1식).건조포장국(3).라면(2).해물포장밥(예비).
       밑반찬:김치.고추양파조림.장조림.젓갈
         식:햄통조림(1).쵸코렛(2).연양갱(2).사탕(1).커피.과일.팩소주(2)
       비상식:찰떡파이(4).육포(1).연양갱(2).비스켓(2).미숫가루
산행구=막영구:대피소이용(담요대여.은박깔판.귀마개)
       운행구:베낭(45).해드램프(건전지+1).알틴스틱(2).산행지도.나침반
       취사구:코펠(2인용).버너(2+연료2).수통(1L).수저.저분.시에라컵.
         류:모자.바지(+1).짚티(+1).방풍자켓(1).양말(+1).내의(+1).장갑.우의.
         타:구급함(응급처치구).세면구(소금.수건).휴지.비닐봉지.신분증(대피소).열차표
떠나며…
삶의 많은 날들이 흘러 갑니다.
생의 허황한 욕심에 미혹되어 몸부림치며 힘들어 하고, 어느덧 불혹을 훠얼 넘어 이제는 하늘이
내게 소명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지천명의 시절이 그리 먼 훗날도 아니건만, 아직도 미망에서
허덕이는 애처로운 자화상이 또다른 나를 찾아 끝모를 어디인가로 떠나게 합니다.
늦었다고 깨닳았을 때 포기하지 않고 시작 해야함을 알기 까지는, 그래도 이만큼이나 흐른 세월
이 내게 가르쳐준 삶의 지혜이겠습니다. H형의 말씀에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통들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축복된 용기와 함께 온다"고 그랬지요. 
베낭에 산행 도구를 챙기고, 무게는 10Kg을 조금 넘깁니다. 대피소 예약 함으로 막영구를 제외
한것이 베낭 무게를 가볍게 합니다.
그렇게 베낭을 꾸리고, 그 한 켠에는 축복된 용기를 담아 떠납니다.
첫째날(10월15일/토) 집에서-구례구역
지난 날. 한번은 중산리로, 또 한번은 백무동으로 올랐던 지리산 천왕봉에서 그랬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 사이를 휘돌은 구름의 바다에서, 작고 큰 산봉들은 저마다의 제 자리에서
제 모양새로 솟구치고, 그것들은 차라리 구비치는 파도로 나를 휘어감는 감동이었습니다.
그 능선의 줄기를 향해 달음질치는 마음의 욕망을 끌어 내리고, "그래, 산이 어디 가냐. 사람이
가는 거지. 언젠가는 이 길을 걸을 때가 있을게다"고 발길을 돌렸던, 그"언젠가"가 바로 오늘입
니다.
도전의 설레임과 조금의 두려움과 그 만큼의 용기가 집을 나서는 발걸음에 실립니다.
늘상 이용하는 마을버스의 느낌이 평범하지 않습니다. 아마 멀고 새로운 길을 출발하는 마음의 
각오가 그렇게 느껴지나 봅니다. 함께 동행할 J에게 전화하니, 지금 출발한다고 합니다.
부평역에서 전철로 갈아 탑니다. 용산역에 도착,역사에서 친구를 만나"안전하게 아름다운 산행"
이기를 서로에게 약속합니다. 아니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하는 기도였을 겁니다.
아니,그런데 우째 이런일이. 혹시나 해서 들어 본 J 베낭이 내것보다 무겁습니다. 지난 8월,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에서도 베낭 무게로 힘께나 들었던 터라, 장거리 종주산행에서 베낭 무게
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 했는데, 그래서 준비품 배분 할때 5Kg정도로 배정 했는데…
(이 베낭 무게는 열차에서 먹을거(포도.알로에)먹고,버릴거(얼음물…!!)버리고 해서,성삼재에서
산행 출발시는 좀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여하튼 J는 먹는거 챙기는 데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
열차 출발 10분전.인터넷 홈티켓으로 프린트 발행한 열차표를 검표원에게 확인하고. 플렛폼으로
들어섭니다. 지정된 좌석 선반에 베낭을 올리고 자리에 앉으니, 제 시간에 열차는 출발합니다.
J는 벌써 포도를 꺼내 먹습니다. 나는 산행지도를 꺼내들고, 산행 일정에 대한 전체적인 설명과
함께 "정말 아무런 사고없이 종주산행에 성공하고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 서로 격려하고 안전
하자"는 약속을 다시 해봅니다.
열차를 타본지가 20년은 된듯합니다. 그때는 비둘기호 3등 완행열차로 기억되는데 지금도 가수
송창식씨의 고래사냥을 떠나는 노래가 생생합니다. 열차 특유의 덜컹거림은 적습니다.
어쨌던지 내일을 위해 잠은 자 두어야합니다. 캔맥주 2개를 사서 포도를 안주삼아 J와 나누어
단숨에 들이키고 좀 부족합니다. 캔맥주 1개를 추가하고 잠을 청합니다.
이런젠장. 한짬도 잠들지 못했습니다. 예민한 성격탓인지 원래 잠자리에서도 엎치락 뒤치락
쉽게 잠들지 못하는 습관이 기어코 귀중한 4시간의 밤을 하얗게 샙니다.
각 역마다 국어, 일본어, 영어 그리고 재차 안내하는 방송은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공신입니다. 
승객들이 목적지에 무사히 하차하는 필수조건 이겠으나, 어쨌든 미운건 사실입니다.
남들은 코까지 골면서 잘도 자는구만… J도 뒤척이는 모양새가 잠을 못잔듯 합니다.
산행이 걱정됩니다.
그렇게 열차는 밤을 가르며 달리고, 이윽고 구례구역에 도착합니다.
둘째날(10월16일/일) 구례구역-성삼재-노고단-세석
베낭을 챙기고 열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내리는 사람들마다 등산차림입니다. 60명쯤…
출구에 비치된 함에 열차표를 넣고 역사를 나가니 가장먼저 택시 기사분들이 반깁니다. 성삼재 
까지 요금은 인당 만원, 혹은 대당 3만원 이랍니다. 대기중인 버스가 눈에 보입니다.
산행 준비할때 고민했던 대목입니다. 택시로 이동해서 노고단에서 아침밥을 먹을건지, 아니면
버스로 이동해서 구례터미널에서 아침밥을 먹고 산행출발 할건지…
시간상으로는 서로 비슷했고, 계획과 실행은 후자를 택했습니다. 산님들 일부는 택시로 출발합
니다. 버스에는 50명정도를 태우고 구례터미널에 도착하여 기사분이 안내합니다."이 버스는 
40분 정차후 4시20분에 성삼재로 출발합니다. 무거운 짐은 두고 내리셔도 됩니다" 우리는 하차
하여 불켜진 식당으로 향합니다. J는 밥생각이 없어 5천원에 재첩국 하나만 시켜 먹습니다.
J는 국물만 몇번 뜹니다. 산행이 또 걱정됩니다. 허허참, 잠 못자고 밥 못먹고 뭔 힘으로...
참.이시간 터미널 화장실이 잠겨있네요. 밤새 잠설친 소화불량 배속은 꾸르륵인데…
한참 소란을 피우고 어찌어찌 연락하여 화장실 문을 엽니다.'그래요. 항상 좀 열어놓으세요!!!'
승객 확인후 버스는 다시 출발하고, 구비구비 산길에 몸은 이리저리 쏠리지만 그래도 잠시 눈을
붙입니다. 힘겹게 오른 버스는 아직은 어두운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합니다. "좋은 산행 되시라"
는 기사분의 덕담에 고마움을 표하며 내립니다. 신발끈을 단단히 조입니다. 
-성삼재(10월17일.05:00도착출발)
이제 본격적인 지리산 종주산행의 시작입니다.
밤새 열차에 버스에 시달린 몸상태가 그리 좋은편은 아닙니다. 까만 산능선 위로 밤하늘의 별들
이 정말 빛이 납니다. 바쁜 세상에 별바라기를 잊고 산듯해서 한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기도 합니다. 안전하게 완주할수 있도록 도와 주십사고… 
어디에 기원했는지는 알수 없으나 하나는 확실합니다. 지난 5월 소백산행에서 운명을 달리한
Y대장에게 빌었습니다. 생전에 함께 종주산행을 계획했으나 실행치못한 아쉬움에 오늘은 그분의
영혼과 함께합니다. 지쳐 힘들면 힘이 되주고, 걸음 걸음마다 안전하게 지켜주길 기도하면서…
입장료(3,200원/2인)를 지불하고, 지도(1,000원)을 구입합니다. 전국의 16개 산 국립공원을 
일주 하면서 생긴 습관입니다. 가지고 온 산행지도는 산행중 선물합니다.
해드렌턴 불을 밝히고 걸음을 내 딛습니다. 많은 산객들은 이미 멀리 앞서가고 점점이 불빛들이
흔들리며, 베낭뒤의 야광 테이프가 빛을 발합니다. "어리석은 사람도 현명해질 수 있다"는 지리
의 산길입니다. 이 길을 걸으며 미망의 한 꺼풀이라도 벗길수만 있다면…
반반한 돌로 잘 다듬어진 길을 지나 흙길을 걷습니다.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에서 좁은 등로
로 갈라지는 삼거리 에서  우측 산행길로 듭니다.  울퉁 불퉁 돌들이 널려진 너덜길을 밤길에,
행여 첫걸음에 발목 다칠세라 작은 불빛에 의지하며 조심스레 발디딤을 합니다.
언덕위로 가로등 같은 불빛이 보이며 건물이 보입니다. 노고단 대피소 입니다. J는 화장실로,
나는 지정 흡연장소에서 연초 한개피를 빼어 뭅니다. 하얀 담배 연기가 구름처럼 피어납니다.
흐트러진 몸도 조금은 제 상태로 돌아온고 산행에 적응된듯 합니다. 취사장에는 많은 산님들이
밥이며 라면을 끓이느라 북적되고, J에게 "라면이라도 먹겠냐"고 걱정스러이 물어보나 "그냥
가자"합니다. 돌길로 이어진 길을 올라 노고단 안부에 도착합니다.
-노고단(06:00도착-06:10출발)
손에 잡힐듯 노고단 정상의 돌탑이 보이고 오르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지정된 시간에 예약자만
갈수 있답니다. 아직은 파아란 여명이 있을뿐 일출이 시작되기는 이른 시간 입니다. 물 한모금
으로 몸을 깨우고 출발합니다. 길 양쪽으로 산죽(갈대?) 잎새들이 팔에 스칩니다. 이제 렌턴 빛
은 필요치 않을 정도로 흐릿한 여명에 해드랜턴을 떼어내 베낭에 넣습니다
-돼지령(06:30.도착출발)
지리산에서의 일출이 시작됩니다. 동녁 하늘이 연주황 복숭아 빛으로 퍼져 나감도 잠시 천연의 
빠알간 구름의 선들이 펼쳐집니다. 여인내의 앵두빛 입술처럼 내민 태양의 둥근 한쪽 끝은 계속
솟아 올라 시뻘건 불덩어리가 되고, 이윽고 황금빛 원형으로 누리를 밝힙니다. 
지리산의 일출입니다. 말과 글의 빈곤을 느낍니다. 그래 그냥 "해가 솟아 올랐습니다"  이것이
마음에 드는 표현이네요. 어떻한 미사여구의 수식도 필요치 않은…
그래서 "가장 위대한 진리는 단순하고 소박하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지리산 일출을 볼수있음에 감사함을 드리고 걸음을 계속 합니다.
-임걸령(07:20도착출발)
샘터입니다. 한무리 단체 산님들이 아침식사로 분주합니다. 펼쳐논 음식들이 화려하고 저마다의
소감들이 시끌벅적입니다. 바가지로 한입 가득 머금어 마시는 물 맛이 목줄기를 타고 흐르며
시원합니다.  부족한 식수는 1리터 물병에 반만 샘물로 채우고, 사람들 많은 곳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 발길을 재촉 합니다.
-노루목(07:50도착-08:00출발)
주능선에서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입니다. 여기가 산행 준비시 고민하다 반야봉 등정을
계획에서 삭제한 곳입니다. 또 한번 마음으로만 읍조립니다."산이 어디 가냐. 사람이 가는 거지
다음에 널널 산행시 오르지 뭐" 그렇게 편하게 스스로 약속 해봅니다.
반야봉은 노루목에서 올라 삼도봉으로 내려서고 1시간정도 소요 된답니다. 주능선 어디에서도
조망이 가능하여 지도정치의 좋은 표식이기도 합니다.
전망좋은 바위에서 잠시 쉽니다. 지도를 꺼내 보이는 산 능선과 봉우리들을 대조해 봅니다.
남쪽으로 웅장하게 뻗어내린 능선에 불무장등이 보입니다. 볼만 합니다. 왼통 산 뿐 입니다.
이 능선이 전라남도와 경상남도를 경계 합니다.
여자 어르신 한분이 힘들어 하는 남자분께 호통 이십니다. "천왕봉은 못 가더라도 반야봉은 올 
라 봐야지" 차아암내! 우리네 남자들은 술에 담배에 찌들어 사는게 나 하나만은 아닌듯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핍니다. 그래요! 포기하지 마시고 힘을 내 천천히 다녀 가세요. 안전은 최우선
입니다. 건강하게 안전하게요. 꼭이요 꼭!!!
산행 간식을 J와 나누어 먹습니다. 상태가 걱정하지 않아도 될듯 십네요.
반야봉의 아쉬움을 남기고 일어섭니다. 20분쯤 진행하니 반야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
리입니다. 삼도봉에 다 왔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삼도봉(08:30도착-08:40출발)
전라남북도 경상남도 방향에 따라 새긴 황동 삼각뿔을 한바퀴 돌아봅니다. 그냥요.
지리의 주능선이 보이는 바위에 베낭을 내려놓습니다. J형이 사과를 꺼내 나눕니다. 연양갱도
나누어 먹습니다. 그래 빨리빨리 먹고 힘내고 베낭 무게도 줄이고…. 일석 이조 입니다.
지금까지 물도 계속 J형 물통만 비웠습니다. 젠장 내 베낭은 한번도 열어보질 못했으니, 아니
빈 물병으로 가져와 임걸령에서 물 반병을 담았으니 더 무거워진 샘입니다.
많았던 산님들이 이제 보이질 않습니다. 아마도 반야봉 산행인듯 싶습니다. 2~3명씩 어우러진
몇 팀만이 지나갑니다. 그중에 색씨 혼자 올라옵니다. 대전에서 출발했다는데 우리와 같은 열차
를 타고 왔습니다. 오늘 벽소령에서 1박 한다는데, 가능하면 세석까지 가도록 조심스레 권유합
니다. 내일 산행은 오늘 1박 장소에 따라 쉬울수도,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색씨는
둘째날 세석에서 만나 연하봉까지 잠시 동행 했습니다. 나중에는 우리보다 앞섰는데 무사히 종 
주를 성공하고 귀가했으리라 믿습니다. 아가씨 홀로 종주산행이라… 그 용기가 대단합니다. 
앞으로 가야할 능선 길이 장쾌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조금 지나 마의 계단길입니다. 누군가 이
정표에 "꼭 601개"라고 낙서하듯이 적어 놨는데 모르겠습니다. J는 하나 둘 셋...오십.
그리고 또 하나 둘 셋…오십을 장난스레 반복합니다. 역시 어렵습니다. 역 종주 길에서 올라오
는 산님들의 숨소리가 계단 만 큼이나 힘겹습니다. 화개재가 보입니다.
-화개재(09:10도착출발)/토끼봉(10:00도착출발)
뱀사골에서 오르고 내리는 산님들이 몇팀 있습니다. 잠시 한숨 돌리고 화개재를 설명한 이정표
를 읽어 봅니다. 다시 출발입니다. 꾸준한 오름길이 계속 되고 이제 토끼봉을 지납니다. 멀리 
오늘 점심밥 먹을 연하천대피소가 있는 명선봉이 보입니다. 주능선 양옆 남북 방향으로 펼쳐진
왼통 산뿐인 장관이 지리산의 웅장함을 실감케 합니다.
그래, 나는 지금 지리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오랬동안 소망
했던 곳, 그렇게도 그리워 했던 지리산에 내가 있습니다.
-연하천대피소(11:40도착-중식-12:20출발)
명선봉의 허리를 돌아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합니다. 10여명의 산님들이 식사중이거나 쉬는 모습
이 보입니다. 물은 충분합니다. 몇분은 열받은 발을 차가운 물에 씻기도 합니다.
우리도 점심밥을 준비합니다. 스토브 하나는 씻어말린 쌀로 밥을 짓고, J의 스토브에는 건조포
장된 우거지된장국에 물만부어 끓입니다. 그런데, "이런이런,우째 이런 일이" J가 사고를 치고
맙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국질러"라 붙이고 한참을 놀리며 웃습니다.
서울근교 산행시도 다녀왔다는 표시인지 엉덩이 도장 찍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오늘은 다른
사고 입니다. "그래, 이것으로 액땜하고 안전하게만 있어다오" 속으로 빌어봅니다.
갈비탕을 다시 끓입니다. 어제 저녁부터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따뜻한 밥에 국에 성찬입니다.
맛있게 먹습니다. 허한 속이 따뜻해집니다.
다시 출발입니다. 다져진 흙길이며, 울퉁불퉁 돌길이 연달아 이어집니다. 무념무상입니다
오직 길이 있고, 오직 걸을 뿐입니다. 그렇게 걷고 또 걷습니다. 삶도 그렇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에서 그렇게 존재합니다. 그 존재 자체에 감사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가끔씩은 서러운
슬픔과 절망에 몸부림치기도 하고, 벅찬 감동에 기뻐하기도 하지만 사람도 궁극은 자연입니다.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대피소 입니다.
-벽소령대피소(14:10도착-14:30출발)
밤새 잠못잔 육신이 피로함을 호소합니다. J형은 잠시 탁자에 몸을 뉘입니다.
힘들때도 됐습니다. 17키로미터,9시간을 줄기차게 걸어 왔으니 무리도 아닙니다. 아직도 한참을
더 걸어 가야 한다는 것이 질리게도 할겁니다. 이곳 벽소령은 이번 종주산행길의 반입니다.
부족한 물을 물통에 보충합니다. 쵸코렛과 비스켓,차가운 물로 지친 몸을 추스립니다.
이런 젠장 100미터 아래 취수장에서 보충한 물에 벌레가 들었습니다. J가 한모금 마시고 발견
하고는 안마신다고 방방입니다. "100미터 아래 취수장에서 담아온 물인데…"
그래도 어쩔수 없습니다. 다시 내려 가기도 힘들고-겨우 100미터라구요. 한번 가보세요. 왕복
200미터가 얼마나 힘든지- 그냥 종주길을 출발합니다.선비샘에서 물을 쏟아내고 다시 담습니다
J는 벌레 들었는지 확인한다고 물병속을 들여다 봅니다.
덕평봉을 지나 칠선봉입니다. 이제 천왕봉을 확연하게 볼수 있습니다. 너무 반갑습니다.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연하봉 장터목대피소도 눈에 들어 옵니다. 내일 가야할 길입니다.
해는 서쪽 노고단 방향에서 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영신봉을 오르며 일몰을 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산들에 구름으로 이어진 운평선너머로 석양은 붉디붉은 천연의 빛깔로 노을을 만들어
냅니다. 아무런 말없이 한참이나 바라봅니다. 말없이 그냥 바라만 봅니다.
-세석대피소(18:00도착-1박)
영신봉을 지나면서 여인네의 열두폭 치마를 펼쳐 이어논듯 작은 광야입니다.한라산의 윗새오름
이 머리를 스칩니다. 세석평전 입니다. 어두워진 산중에 하룻길을 마치고 세석대피소에 듭니다.
예약한 잠자리를 배정받고(7,000원/인) 담요 4장(1,000원/장)을 대여합니다. 여기는 남녀유별
입니다. 설악산 중청대피소는 남녀 이별이 없는데….
오늘 잠자리는 널널입니다. 인터넷 예약현황이 정원 140석에 3분에 1정도를 확인한 터라…
배정된 자리에 담요를 깔아놓고 저녁밥거리 준비하여 취사장으로 갑니다. 점심밥 사고로 국은
정체를 알수 없습니다. 김치 햄 고추양파조림 마늘조림… 짬뽕부대찌게국입니다.
밥은 내일 아침밥까지 합니다. 밖은 너무추워 얼음이 얼정도 입니다. 그냥 취사장에서 신문지
깔고 저녁밥을 먹습니다. 그 따뜻함에 기인 하루의 피로를 풉니다. 팩소주 하나를 나누어 건배
합니다. "수고했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그리고 내일을 위하여" 서로를 격려합니다.
취사구는 정리하여 취사장에 그냥 둡니다. 내일 새벽밥은 여기서 먹고 출발하려 합니다.
고생한 다리에 감사함을 보네며, 스프레이 파스로 마사지합니다. 이제 잠자리에 듭니다.
지금은 밤 8시 30분 입니다.
세째날(10월17일/월) 세석-천왕봉-중산리-구례구-서울
산중에서의 하룻밤을 깊고 편하게 잤습니다. 대피소는 춥지않을 정도로 히터의 온도를 유지합
니다. 피곤한 몸도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새벽 5시, 담요 정리하고 베낭을 꾸려 취사장으로
갑니다. 아침밥은 햄미역국으로 따뜻이 먹습니다. 커피한잔도 빠질수없는 맛과 멋입니다.
우리는 다시 천왕을 향해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늘 산행 날머리 중산리까지는 10.7키로입니다.
-촛대봉(06:30도착-06:50출발)
지리산의 일출입니다. 천연의 빛깔로 물들인 동녘 하늘에 해가 솟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한참을 보고 있습니다. 말없이 말없이…. 정말 축복된 행운이며 행복입니다.
"불혹도 훠얼 넘긴 삶의 여정이 미망에 혹하여 괴로워 몸부림친 날들이 적지 않겠습니다. 미망
의 한 꺼풀만이라도 벗기어 버릴수만 있다면, 훠이 훠이 평온한 날개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진정 촌각의 한 순간 만이라도 욕심에서 벗어난 나를 볼수만 있다면…"
길은 계속됩니다. 연하봉(?)에 누군가 한 무더기 돌탑위로 고사목을 세웠습니다. 문득 설악산
공룡에 있는 마등령의 독수리 머리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스칩니다. 날카로운 부리는 없습니다.
설악산이 젊은 여인의 눈부신 화려함이라면, 이곳 지리산은 어머님의 따뜻하고 포근함입니다.
이제 천왕은 아침 햇살에 눈부신 빛으로 다가옵니다.
-장터목대피소(08:10도착-08:30출발)
많은 산님들이 아침밥에 분주합니다. 확연히 깨어난 육신에 쵸코렛으로 힘을 보충합니다.
오늘은 여유로운 산행이 될듯합니다. 제석봉 으름길이 가파르게 이어집니다. "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 인것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환하게 정원처럼 드러나는 제석봉입니다.
-제석봉
제석봉에는 어리석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슬픔이 있습니다. "화전을 일구고 나서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놓았다"는 설명입니다. 안타까운 제석봉에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고사목들만이 황량한 봉우리를 지킵니다. 
제석봉을 돌아 너머 이제 천왕봉은 손에 잡힐듯 가까이 있습니다. 반가운 얼굴입니다. 짧지만
기인 시간을 당신의 품 속에서 노닐다 만나는 참으로 반갑고 고마운 얼굴입니다. 너무도 반가워
"천왕, 천왕" 불러봅니다.
-천왕봉(09:40도착-10:20출발)
드디어 천왕을 만납니다. 그리고 정상석 그 얼굴을 만져봅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현하다"
그래, 여기는 천황봉 입니다……………………!!!.
삶의 기인 여정을 돌아 다시 제자리에 선 원래의 모습 그대로 그 자리입니다.  치열한 역사를 지니고
그냥 그렇게…!
뒤돌아 걸어온 길을 바라봅니다. 멀리 지리 주능선 어디에서도 보인다는 반야봉, 그 뒤로 노고단이
아득 합니다. 진정 아름다운 길 입니다.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울 수 있다는 길입니다.
"미망의 한 꺼풀만 벗길수 있다면…. 비워야 채울 수 있는데, 비워야 채울 수 있는데….
뽀얗게 피어나는 J의 미소가 한아름 함박꽃입니다. 친구야, 친구야……………
첫사랑의 설레임과도 같이 처음 출발할때 "받아 주십사고, 무사히 그 길을 갈수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십사고 기도했습니다. Y대장의 영혼이 걸음걸음 마다에 보살핌을 주십사"고 빌었지요.
우리는 그렇게 노고단-천왕봉 지리산 길의 작은 소망을 가슴에 담습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합니다. 중봉을 지나 치밭목 대원사방향의 능선이 눈에 듭니다. "언제 인가는
다시 와 화엄사 반야봉과 함께 그 길을 가리라"는 꿈을 그립니다. 중산리로 하산합니다.
자꾸 천왕의 얼굴을 뒤돌아 봅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떨어지기 싫은 어린아이의 눈빛일 겁니다.
-법계사.로타리대피소(11:20도착-12:00출발)
누룽지로 점심밥을 짓습니다. 반찬도 바닥을 보입니다. 마지막 식량이 제 역할을 다합니다.
J의 베낭이 깃털처럼 가볍습니다. 긴 산행길을 완주했다는 포만감이 한없는 여유를 부립니다.
광주의 산님들과 고마운 인연이 하산길을 더디게 합니다.
망바위는 어깨위 머리를 꼿꼿이 세워 천왕봉을 지키고, 칼바위는 벼린 날을 세웠습니다.
아직 하산길은 계속입니다. 산행 마지막 한 걸음까지 조심합니다.
-중산리(14:30도착-16:30출발)
드디어 지리산 성삼재에서 중산리의 종주산행을 마칩니다. 33.8키로 무려 21시간을 걸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울려오는 벅찬 환희의 보람을 하늘에 토해냅니다. "아자,아자…
J의 웃는 얼굴이 아름답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의 밝고 맑은 얼굴입니다. 도전하는 사람의 용기
가 빛을 발합니다.
살며 오늘이 기억 되겠지요. "우리에게 오는 시련과 고통은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축복된
용기와 함께 온다"고 그랬습니다. J는 진정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원래 계획했던 중산리-진주행 버스 시간을 잠시 잊었습니다. 어짜피 계획했던 버스는 탈수없고
광주 산님의 승용차로 구례역으로 가기로 정합니다. 남는 시간 두부김치에 동동주 두 도가니를
비웁니다. 
광주 산님의 승용차는 화개장터를 지나 구례구역에 도착합니다. 고마운 인사를 전하며, 북한산
종주의 기약없는 약속을 합니다. 고맙습니다
-구례구역(18:40도착-19:15출발)
구례구역사는 이미 어둠이 깔립니다. 계획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이대로 서울에 도착하면 자정
이 될겁니다. 집으로 가는 전철이 확신이 없어 걱정입니다. 다행이 호남선과 만나는 익산에서
KTX로 환승하는 열차가 있네요. 이곳 전라선은 2007년에 KTX개통 이랍니다.
열차 식당칸에서 늦은 저녁밥 갈비탕을 주문합니다. 맥주잔을 기울여 건배합니다.
"친구여, 대단하다. 그리고 고맙다……. 친구야, 친구야…"
-용산역(22:49도착-23:10출발)
서울의 밤입니다. 서울은 늘상 바쁘게 돌아갑니다. 전철 시간에 쫏겨 산행후 담소도 나누지 못
하고 반대편 전철로 헤어집니다. "제기럴, 서울은 바쁩니다. 그것도 아주 신경질나게 바쁩니다.
도회지의 일상으로 돌아온 마음도 바빠집니다. 제길헐…"
J에게 전화합니다. 집에 무사히 도착했답니다. 다시한번 고맙고 아쉬운 인사를 건넵니다.
"친구야, 다음에 또 가자!!!!!!!!!!!!!!!!!!!"
-부평집(24:30도착)
1무1박3일간의 지리산 종주산행을 마무리합니다.
무엇인가 비우고 버리려 하였으나 버리지 못하고, 얻어 채우려 하였으나 채우지 못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 없습니다. 얼만큼의 세월이 더 지나야 알수 있을지도 알수없습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고 그것을 알지도 못한체 제가 평생을 짊어질 삶의 무게인지도 모릅니다. 
그져 나는 나 일뿐입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삶에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하며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또 감사합니다. 소중한 인연들에 감사합니다.
~ 쉬~일곳은 작~은 집, 내 집에서 오늘밤은 진한 잠을 잡니다. 그 "길'을 꿈꾸며…!!!